청호웹진 5월호

여행으로 만나는 인도신화 이야기 3

고대도시 함피의 나라심하(Narasimha) 신화 ; 비슈누의 인간사자 아바타

- 김진영 / 서강대학교 교수 -

나라심하(Narasimha)가 행한 정의의 승리를 기념하는 홀리축제

page 신비한 도시 함피의 전경 : 저 멀리 비루팍샤 사원이 보인다.

나라심하(Narasimha)가 행한 정의의 승리를 기념하는 홀리축제

함피(Hampi)는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Karnataka)주에 있는 고대도시이다. 직항도 기차역도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멀리 떨어진 발라리(Ballary) 공항과 호스펫(Hospet) 기차역을 거친 후 버스를 갈아타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방문하는 세계적 관광지다.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산을 이루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는데 그 한가운데 함피를 대표하는 비루팍샤(Virupaksha) 대사원이 있다. 웅장한 크기에 아름답게 조각된 돌기둥, 우뚝 솟은 관문, 신비한 코끼리가 있는 순례지로도 유명하다.

page 거대한 나라심하(Narasimha) 조각상 : 사자의 얼굴에 인간의 몸통을 한
반인반사자상

함피 전역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데 특히 헤마쿠타(Hemakuta) 언덕에 있는 폐허가 된 사원터 남쪽으로 향하면 높이가 6.7m에 달하는 거대한 나라심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나라심하는 비슈누(Visnu)의 반인(伴人) 반사자(半獅子) 아바타(avatar, 化神)이다. 이름 자체가 사람을 뜻하는 ‘나라(nara)’와 사자를 의미하는 ‘심하(simha)’가 합쳐진 말이다. 인간의 몸통에 사자의 얼굴과 발톱을 한 채 요가 가부좌 자세로 앉아있고 머리 위에는 우주의 뱀(Ādiśesa)이 그를 보좌하고 있다. 본래 배우자인 여신 락슈미(Laksmī)가 무릎 위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었지만, 1565년 무굴족 침략시에 심각하게 손상되어 이 부분은 카말라푸라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로 조각했으며 눈을 상당히 크고 동그랗게 묘사하여 마치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악한 아수라에 느끼는 분노를 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성난(Ugra) 나라심하’라고도 한다.

나라심하의 신화는 대지여신을 납치한 아수라 히란약사(Hiranyāksa)가 비슈누에게 살해당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란약사의 쌍둥이 동생 히란야카시푸(Hiranyakaśipu)는 형의 원수를 갚고자 엄청난 고행(苦行, tapas)을 거듭한다. 고행의 열기로 세상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창조주 브라흐마(Brahmā)는 세계를 구하고 고행자의 노력에 보상을 주기 위해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히란야카시푸가 브라흐마에게 요청한 소원은 “신, 인간, 짐승은 자신을 죽일 수 없으며, 낮이나 밤, 내부나 외부, 땅과 허공에서도 죽지 않고,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에게도 죽임을 당할 수 없게 해달라”고 하는 까다로운 것이었다.

page 뉴델리박물관의 나라심하 : 사자의 얼굴로 아수라를 무릎 위에 놓고 살해하는 장면

그럼에도 브라흐마신이 그의 소원을 들어주자 기고만장해진 히란야카시푸는 자신을 최고의 신이라고 선포하고 다른 신에 대한 숭배를 금지한다. 그러다가 아들 프라흘라다(Prahlāda)가 비슈누의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아들이 이를 거부하자 그는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여러 차례 아들을 죽이려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프라흘라다는 비슈누의 보호를 받아 살아남는다. 화가 난 히란야카시푸는 돌기둥을 걷어차며 이 안에 비슈누가 있는지를 아들에게 묻는다. 아들은 “비슈누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만물에 두루계십니다. 그러니 내 눈앞 바로 이 기둥에도 계십니다”라고 답한다. 이에 분노한 히란야카시푸는 칼을 뽑아 기둥을 내리친다. 그러자 기둥 사이에서 아바타 나라심하의 모습으로 비슈누가 나타나 아수라 히란야카시푸를 처단한다.

나라심하는 인간도 동물도 아닌 반인반수, 인간과 사자의 혼종으로 등장한다. 낮도 밤도 아닌 낮과 밤의 교차점인 황혼 녘에, 안도 바깥도 아닌 문지방 위 기둥에서 솟아났다. 그리고 땅도 허공도 아닌 자신의 허벅지 위에 히란야카시푸를 올려놓고,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수라를 죽인다. 비슈누는 히란야카시푸가 브라흐마신에게 요청했던 강력한 소원의 내용을 모두 피하여 자신의 형태, 등장 시간과 장소, 살해무기를 정하여 나타난 것이다.

인도인들은 동물 중에서 사자를 최고의 맹수로 여긴다. 나라심하는 창조주 브라흐마에 의해 무적이 된 아수라를 이기기 위한 비슈누신의 지능적 계략에 의해 탄생한, 인간의 지성과 동물의 흉포함이 결합된 경이로운 아바타의 화현이다. 힌두예술에서 나라심하는 아수라를 죽일 때의 동물적 포악함을 강조하여 표현되며 주로 기둥에서 튀어나와 아수라의 배를 찢어 긴 창자를 화환처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숭배된다. 몸은 인간이지만 곱슬머리의 갈기, 날카롭고 구부러진 이빨, 사자의 얼굴이라는 동물적 형태가 강조되면서 악으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는 비슈누신의 강력함을 도드라지게 표현한다.

page 바라나시힌두대학 박물관의 나라심하 : 비슈누의 아바타들 가운데 나라심하 아바타

인도를 대표하는 축제로 홀리(Holi) 축제가 있다. 색물감을 서로에게 던지며 즐기는 것으로 잘 알려진 홀리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음을 기념하는 인도에서 가장 큰 축제이다. 축제기간 동안 사람들은 놀고 웃으며 지난 잘못을 용서하고 깨진 관계를 회복한다. 홀리축제는 나라심하 신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홀리는 히란야카시푸의 여동생이자 프라흘라다의 고모인 홀리카(Holikā)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홀리축제 전날 모닥불을 피우는 작은 홀리인 ‘촛티(Chhoti) 홀리’를 행하는데 이를 ‘홀리카를 태운다’는 의미인 홀리카 다한(Holikā Dāhan)으로 부른다.

히란야카시푸는 비슈누의 열렬한 신도인 아들 프라흘라다를 여러 번 죽이려 시도한다. 절벽에서 밀고, 끓는 기름 냄비에 넣고, 코끼리 발로도 짓밟았지만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동생 홀리카에게 도움을 청한다. 불의 신의 축복을 받은 홀리카는 불을 견디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사악한 홀리카는 무릎 위에 조카를 잡아놓고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다. 그녀는 불의 신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막상 불이 붙자 정반대의 일이 발생한다. 플라흘라다는 비슈누에 대한 믿음으로 상처 하나 없이 불에서 나왔지만 홀리카는 불의 신에게 처벌받는다. 홀리축제에서 인도인들은 다양한 빛깔의 색가루와 물감을 서로 묻히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반드시 축제 전에 모닥불을 피워 마음속의 악의(惡意), 즉 홀리카를 태우면서 축제를 맞이해야 한다. 나라심하가 행한 정의의 승리를 기념하면서 홀리카 죽이기로서 축제의 문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