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5월호

법률속의 부처님법 이야기 3

모욕죄와 선계경의 가르침

- 서형교 / 청호불교문화원 상임감사 -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모욕은 바로 모욕한 자에게 되돌아가는 법

page 제주도 약천사 본당 부처님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모욕은 바로 모욕한 자에게 되돌아가는 법

우리가 세상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모욕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이를 때로는 웃어넘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참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큰 다툼이 벌어져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5년에 개봉되어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에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2개의 명대사가 있다.

먼저 이 영화의 결말부분에서, 부하가 왜 자기을 죽이려고 했는지 보스에게 묻는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나를!” 이에 보스가 대답한다. “넌 내게 모욕감을 주었어.” 그토록 충직했던 부하를 죽이겠다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받은 모욕감이다. 또한 이 영화의 도입부에, 어느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응시하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한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일 뿐이다.”

오직 마음인 것이다. 누군가 내게 모욕을 주더라도 내 마음이 그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모욕은 바로 모욕한 자에게 되돌아가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차려놓은 밥상을 손님이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차린 사람이 먹게 된다.”고 말씀하셨고, 일찍이 선계경(善戒經)에서도 모욕에 대한 인내를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모욕을 참지 못하는 것이 번뇌의 원인이다.
나에게 집착하는 온갖 번뇌는
남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내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다​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참지 않는다면
이는 곧 스스로 죄업을 짓는 것이 되고
그 죄업은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善戒經>

우리 형법상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서 (형법 제311조),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부적 명예를 보호법익1) 으로 하고,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2016.10.13선고 2016도 9674 판결 등). 이러한 모욕죄와 관련하여 최근에 화제가 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A(피고인, 가해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난에 연예인인 B(피해자)를 ‘국민호텔녀’로 지칭하는 댓글을 게시하여 모욕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B는 ‘국민첫사랑, 국민여동생’ 등의 수식어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받아 온 점, 이전에 B가 남성 연예인과 데이트를 했다는 취지의 보도가 되었고, 직후 B와 그 남성 연예인은 연인관계임을 인정한 바 있는 점, A는 B가 출연한 영화 개봉 기사에 “그냥 국민호텔녀”라는 댓글을 달았고, 수사기관에서 이 댓글에 대하여 “피해자를 언론에서‘국민여동생’으로 띄우는데 그 중 ‘국민’이라는 단어와 당시 해외에서 모 남성 연예인과 호텔을 갔다고 하는 스캔들이 있어서 ‘호텔’이라는 단어를 합성하여 만든 단어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점을 종합하면,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은 B의 사생활을 들추어 B가 종전에 대중에게 호소하던 청순한 이미지와 반대의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하는 것으로서 여성 연예인인 B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멸적인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고,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정당행위로 보기도 어려우므로,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대법원 2022. 12. 15. 선고 2017도19229 판결)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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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선을 긋기는 지난한 일이지만, 표현행위의 형식과 내용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타인의 신상에 관하여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의견 표명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인종, 성별,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한 혐오 표현이 문제 되고 있으며, 혐오 표현 중에는 특정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여 모욕죄의 구성요건에도 해당하는 것이 적지 않은데, 그러한 범위 내에서는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제한 내지 규제로 기능하고 있는 측면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헌법재판소 2020. 12. 23. 선고 2017헌바456 등 전원재판부 결정)도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하거나 남에 대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처를 줄 수 있는 모욕적인 부분은 없는지 톺아보는 주의가 필요하고, 나아가 사소한 모욕감을 인내하지 못하고 송사로 이어지는 세태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른 물줄기를 찾아가기를 소망해본다.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분노하였던 일은 대체로 그 단초를 내가 제공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내가 별 생각 없이 던진 말 속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모욕적인 언사는 없었는지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 그 동안 나의 잘못된 언사를 끝내 감내해주셨을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선계경의 말씀처럼 모욕을 참지 못하는 것이 번뇌의 원인임을 마음 깊이 새긴다.

1) 보호법익이란 형법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 또는 가치, 즉 구성요건에 의하여 보호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살인죄에서 사람의 생명, 절도죄에서 재물의 소유권 등을 말한다.